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배우 이순재가 ‘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’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. 유튜브 채널 ‘백상예술대상’ 영상 캡처
69년 차 배우 이순재(90)가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기에 대한 열망과 도전 정신을 한 편의 연극 무대로 꾸며 후배 배우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.

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이순재는 ‘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’라는 주제로 약 10분간 공연을 펼쳤다.

이순재는 연극 오디션에 접수한 참가자를 연기했다. 심사위원을 앞에 둔 채 자리에 앉은 이순재는 “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 번호 1번이다”라고 말했다.

심사위원이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“올해로 90세가 된 이순재”라며 “1956년 연극 ‘지평선 너머’로 데뷔했다. 드라마 175편, 영화 150편, 연극은 100편 미만이지만 숫자를 다 기억하진 못한다”고 밝혔다.

배우 최민식이 이순재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존경심을 표했다. 유튜브 채널 ‘백상예술대상’ 영상 캡처
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느냐는 물음엔 “오늘 오신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다 함께 해보고 싶다”면서도 최민식을 언급했다. 이어 “영화 ‘파묘’ 잘 봤다. 정말 애썼고 열연했다. 언제 그런 작품을 같이 해 보자. 내가 산신령 역을 하든 귀신 역을 하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”고 말했다. 이에 최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순재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존경을 표했다.

또 이순재는 배우 이병헌을 향해 “우린 액션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치고받을 순 없고 한국판 ‘대부’를 찍자”고 말했다. 그러면서 “내가 말론 브랜도 역할을 하고, 이병헌 배우가 알 파치노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”며 웃어 보였다.

배우 이병헌이 한국판 ‘대부’를 찍자는 이순재의 말에 웃어 보였다. 유튜브 채널 ‘백상예술대상’ 영상 캡처
대사량이 많은데 외울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“대본 외우는 거요? 그건 기본입니다”라고 소신을 밝혔다.

이순재는 “대본을 외우지 않고 어떻게 연기하나.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 따라가느냐다. 스스로 판단했을 때 ‘미안합니다. 다시 합시다’를 여러 번 하면 그만둬야 한다”며 “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. 대사에 혼을 담아야 하는데 못 외우면 혼이 담기겠나. 대사 외울 자신 없으면 배우 관둬야 한다. 그건 원칙”이라고 강조했다.

연차가 높은데 왜 아직도 연기에 도전하냐는 물음엔 “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다. 몸살을 앓다가도 큐사인이 떨어지면 일어난다”며 “그런데 연기가 쉽진 않다. 평생을 해오는데 안 되는 게 있다.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공부한다”고 답했다.

그러면서 “항상 새로운 작품, 역할을 도전해야 한다. 새롭게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, 고민하는 게 배우다. 그래야 새로운 역할이 창조된다”며 “그동안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, 이만하면 됐다는 배우 수백 명이 없어졌다. 노력한 사람들이 남아있는 거다.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게 이거다. 완성을 향해서 고민하고, 노력하고,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”이라고 했다.

배우 엄정화가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. 유튜브 채널 ‘백상예술대상’ 영상 캡처
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“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”고 말했다. 이어 즉석에서 연극 ‘리어왕’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. 그는 무대 중간으로 이동해 안경을 벗고 한때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리어왕이 자식에게 버려져 광야에서 비바람 맞으며 했던 명대사를 선보였다. 지난해 이순재는 전 세계 최고령으로 ‘리어왕’에 출연한 바 있다.

연기를 마친 이순재는 관색석을 향해 “고맙습니다”라고 인사한 뒤 심사위원에게 “나 꼭 시켜야 해”라고 말하며 퇴장했다.

배우들은 내내 이순재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모습이었다. 이순재의 무대가 끝난 뒤 배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. 유연석과 엄정화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.

배우 유연석이 이순재의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. 유튜브 채널 ‘백상예술대상’ 영상 캡처

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@donga.com